[잡담] 오행에 관한 설정
2019.02.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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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나 판타지소설을 보면 간혹 오행(五行)에 관한 설정이 나오는 경우가 있죠. 사실 동양문화권에서 이 오행이라고 하는 건 그야말로 안 들어가는 데가 없을 정도로 밀접한 요소이다 보니 설정에까지 반영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계절, 풍수, 방위, 의약, 오장육부, 오감, 오색, 오음, 오미, 인의예지신의 오상 등, 심지어 년월일시의 십간십이지에 이르기까지 오행은 정말 빠지는 곳이 없죠.
다만, 그런 오행에 관한 설정은 고무줄처럼 들쑥날쑥해서 작품마다 다 제각각입니다. 예를들어, 오행에 따른 색깔이나 방위, 속성배치 따위가 제각각인 식이죠. 파란색이라는 이유로 원래 木行을 관장하는 청룡이 물속성, 뇌전속성이 된다거나, 水行을 관장하는 현무가 검은색이라는 이유로 땅속성이 된다거나, 백호는 아얘 金行은 커녕 바람, 뇌전속성이라거나. 토행의 신수인 황룡이 황금에서 연상되는 금속속성, 빛속성, 뇌전속성이 된다거나. 이처럼 현실의 오행과 판타지소설 속의 오행은 이처럼 이미지만 본땄을 뿐, 서로 무관한 다른 존재입니다.
오행이 정령과 연관되는 경우도 곧잘 있었죠. 아무래도 사람들 뇌리에 서양의 사원소, 동양의 오행이라는 관념이 박혀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이미지마케팅이었다고 봅니다.
서양식 사원소에서 비롯되는 4대정령을 오행에 대응하려다 잘 되지 않다 보니, 처음에는 바람의 정령을 목행이나 금행에 대응시키려다가 바람의 정령이 따돌림을 받고 새로 금속의 정령과 초목의 정령이 설정에 합류하는 경우도 있었죠.
시대가 변하면서 오행에 대한 상식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오행이 자연의 흐름과 관련되었다는 설정이 곳곳에서 차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오행이 아무래도 사원소 같은 속성과 관련되었다는 인식이 많다 보니 그 와중에 뭔가 마법적인 취급을 받게 되었지만요.
제 경우는 최근 오행에서 이상한 점을 느껴 참오하던 중, 천계와 같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건, 오행의 상생상극에 대한 의구심이었습니다. 상생부분에서 수생목, 목생화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는 이해하기 어려웠죠. 상극 부분 역시, 수극화, 화극금, 금극목, 목극토, 토극수에 관한 내용을 어렴붙이 알듯말듯 한 수준에 그쳤을 뿐 왜 그런식으로 분배되었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애초부터 왜 쇠붙이인 금행과 나무인 목행이 오행의 순환에 들어가는지도 잘 이해할 수 없었죠.
그러다가, 최근에 그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계기는 일 때문에 약속장소로 버스를 타고가던 중, 머릿속으로 오행에 관한 설정을 한참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던 도중이었습니다.
요컨데, 화생토와 금생수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화전(火田)이라는 개념이 번뜩 떠오르더군요. 비료와 농사기술이 발달한 현대와는 달리, 오행이 처음 성립되던 당시에는 사람들이 농토를 얻기 위해 반드시 화전을 일구어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죠. 더군다나 주역의 토대가 되었던 홍범구주(洪範九疇)는 은나라 시절의 문명의 정수인데, 은나라 당시의 고대중국은 그야말로 남미를 연상케 하는 아열대 밀림지대였다고 하죠. 그렇다면 더더욱, 인간이 농토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숲을 불태우지 않으면 안되었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화생토의 한 양상을 '화전'이라고 봤을 때, 여기서 상생을 의미하는 生은 북돋아주는 개념이 아니라, 토행을 얻기 위해 화생을 사용한다는 개념에 가까워집니다. 일종의 인위적인 생산활동이 되는 거죠. 이와 같은 관점에서 봤을 때, 토생금은 단순히 땅에 광물이 매장되어있다는 개념으로는 볼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여기서 1차적으로 '채광'행위를 떠올렸고, 다시 2차적으로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산물로 만들어진 문명의 이기(利器)들을 떠올렸죠. 즉, 토생금은 채광과 제작행위를 의미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금생수는 무엇인가? 여기에 이르러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우물을 파기 위해서, 혹은 치수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쓸만한 도구가 있어야 합니다. 이기(利器)가 없이는 우물을 팔수도, 둑을 쌓아 치수를 할 수도 없게 되죠. 물을 얻기 위해 도구를 사용하는 행위, 즉, 금생수는 '치수'가 됩니다. 자연히 수생목은 농업과 임업 전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목생화는 불을 얻기 위해 나무를 떼는 행위를 가리키죠.
즉, 상생의 입장에서 봤을 때 오행은 결코 자연의 흐름따위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오히려 인간이 자연속에서 자신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한 선결과제들이,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경우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듯 싶었습니다. 지극히 인위적이고 세속적이며 인간중심적인 개념인 겁니다.
목행은 땔감을 얻는 행위, 화행은 불을 지르는 행위, 토행은 토지를 창출하는 행위, 금행은 도구를 제작하는 행위, 수행는 치수를 비롯한 관개행위, 라는 느낌이죠.
상극의 입장에서 봤을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토지를 농지로 쓸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초목입니다. 그런 초목은 금속의 도구를 써야 비로소 없앨 수 있죠. 금속을 제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로 녹여야 합니다. 불을 꺼뜨리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하죠. 그리고 수해를 막으려면 반드시 흙으로 둑을 쌓아야 합니다. 그러나 토지를 오래 사용하면 그 토지는 더 이상 인간이 살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면 다시 초목이 자라 토지를 원시로 되돌려야 하는 것이죠.
즉, 상생이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필요한 것을 손에 넣는 행위라면, 상극은 그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재해에 대처해 자연을 제어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생과 상극의 관계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죠.
한편, 흔히 말하는 사원소설이나 4대정령과 연관짓기 좋을만한 개념이 동양에도 있으니, 그것을 가리켜 6대(六大)라고 부릅니다. 불경 중에서 중아함경에 나오는 분별육계경에 나오는 개념으로,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공(空), 식(識)의 6가지는 각각 우리 신체의 구성요소 및 정신활동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만약 무공으로 정령계약 같은 걸 하고 싶으면 오행기공이 아니라 육대기공이나 사대기공을 등장시키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오행을 오장육부와 어떻게 연관짓는가, 오상과 관련지어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는 것은 차후에 다시 고민해볼 생각입니다. 나중에 이런 설정으로 무협설정이나 하나 짜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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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은, "Prince of Dark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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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4
Rhyneid님의 댓글
<div>오행의 목화토금수는 말 그대로 "나무, 불, 흙, 쇠, 물"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각각의 속성의 대표적인 상징이 나무, 불, 흙, 쇠, 물이었을 뿐입니다.</div>
<div>화생토는 성장기가 끝나서 완숙기가 찾아오는 모습을, 토생금은 완숙기가 노년기로 접어드는 모습을. 금생수는 노년기가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div>
<div>목화토금수는 각각 시작(나무가 자라는 모습), 성장(불이 타오르며 커져가는 모습), 완숙(흙에서 작물이 풍요롭게 자라는 모습), 노년(쇠가 단련이 끝나서 강인하게 남은 모습), 끝(시체가 썩어 물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걸로 이해하시는게 빠릅니다.</div>
<div><br /></div>
<div><br /></div>
<div>그리고, 원래 오행에서 바람은 木에 들어가는 요소…(소근</div>
아르니엘님의 댓글의 댓글
Eida님의 댓글
슈이네스님의 댓글
<div>일단 본문에서 언급한 아이디어는 상당히 마음에 드네요. 동양이고 서양이고 조화니, 인공이니 나누지만 </div>
<div>따지고 보면 결국 인간의 삶을 기준으로 삼고 있으니까요.</div>
<div><br /></div>
<div>그리고 덤.</div>
<div>아는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지만, 황룡과 사신은 별개의 분류입니다!</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