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_네타] 콘크리트 유토피아-삶을 향한 이성과 광기의 차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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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15 16:54 841 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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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무너지는데는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소행성 충돌이나 핵전쟁, 스카이넷, ALZ-113, T-바이러스, 검은 액체, 타임폴, 제노모프, 코버넌트 등등 이지요. 대개의 정부는 이런 인간의 상식을 넘어선 미증유의 존재에 힘에 부쳐 무너지거나 일찍히 수뇌부가 전멸당해 사실상 무정부 상태로 전락하여 쪽도 못쓰는등 시기가 길든 짧든 무너집니다. 그러나 끝끝내 사람들은 힘을 합쳐 다시 정부를 세우고 과거의 찬란한 문명으로의 복구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초장부터 갑작스런 대지진으로 세상이 무너집니다.(솔직히 그정도 지진에 산 사람도 많은 게 놀랍긴 합니다.) 어떠한 징조도 없이(굳이 말하자면 유성우 예보????) 말입니다. 무능하다고 하지만 영화 속 국회의원도 이런 현실을 감당하지 못해 사람들 사이로 숨어들게 됩니다. 저는 예전에 벤 윌슨이란 사람이 쓴 메트로폴리스란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을 읽으면서 인류 최고의 자부심이자 발명품은 도시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도시의 빈민층이라 해도 그 안의 시스템은 어떠한 빈민도 삶을 영위할 수 있고 그 속에서도 더 나은 삶을 향한 기회를 엿볼 수 있으며, 도시를 짓밟았던 반달족이나 몽골족, 만주족도 도시의 삶을 인정하고 자기들만의 도시를 만들어 삶을 영위했을 정도니 말이니깐요.


그러나 도시는 거대한 시멘트 폐허가 되었습니다. 시리아 내전 당시 알레포의 사진을 보면 내전 전후의 차이가 뚜렸했는데, 그럼에도 알레포의 건물들은 뼈대만이라도 남아 있었지만, 영화의 건물들은 폭삭 무너져 완전히 가루가 되었습니다. 딱 1채 황궁 아파트만 빼고요.


황궁아파트는 복도식 형태의 전형적인 소시민 아파트 입니다. 옆 호화아파트 드림 팰리스 주민들에게 무시당하면서 말이죠. 그러나 이제 현실은 하늘과 땅이 뒤집힌 것 마냥 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 자기들이 무시했던 황궁아파트에 가서 사정하기 시작하죠. 부족한 자원을 가지고(하필 또 겨울이라 농사도 짓기 힘듭니다.) 싸움이 일어나자 아파트 주민들은 불을 끄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은 김영탁이란 사람을 대표로 내세웁니다. 그리고 김영탁은 투표를 통해 아파트에 기거하기 시작한 외부인들을 모조리 쫓아냅니다.


결말은 영화관에서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하지만 내용이 어느 영화나 그렇듯 파국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김영탁은 아파트 주민들에게 일종의 모세와 같습니다. 재난 매뉴얼에도 벗어난 천재지변에 방향을 상실한 주민들을 어떻게든 살아남게 만들죠. 그가 밖에서 얼마나 냉혹하기 행동했든 간에 아파트 안에 여사분들은 밖의 지옥같은 상황을 모르고 수다를 떨면서 하하호호 그러죠. 오죽하면 영화 중반에 김영탁의 정체에 알고 있는 소녀는 이런 분위기를 견디지 못할 정도입니다. 본인은 지옥 수렁 속에서 살아 집에 도달했는데 아파트의 아줌마들은 따뜻한 난로에서 담소를 나누니까 말이죠. 하지만 모세긴 한데 그는 사악한 모세이기도 합니다. 그가 있어서 사람들은 밥을 구하고, 뒷산에 물이 솟아지며, 잔치도 벌일 수 있지만, 그걸 하기 위해 그는 냉혹하게 외부인들을 추방하고, 차마 내쫓지 못해 집 안에 거둔 사람들을 조리돌림하며 억압합니다. 그가 문 앞에 칠한 빨간 페인트는 성경에서는 여호와의 천벌로부터 히브리인을 구하기 위한 술책이지만 여기서는 배신자를 향한 낙인의 흔적입니다. 모세는 최대한 사람들을 품을려고 노력하지만 김영탁은 자기를 배척할려는 이들에게 잔인한 폭력을 행사하는 폭군이기도 합니다. 그의 몰락은 혼란한 시기 자기에게 맞지도 않은 자리에 앉은 댓가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보고나서 저는 같이 본 지인과 이야기를 했는데, 영화 속 국회의원이 좀 책임감이 있었으면, 이런 파국에 이르지는 않을거라 말이 나왔습니다. 그 국회의원이 세상이 무너지자 딱 나타나서 아파트를 비상 대책 위원회로 하겠음! 일단 세상이 무너졌으니 무기가 필요하니 가까운 경찰서나 파출소에서 무기 보급을! 또 주변에 거점을 만들어서 아파트가 외부 세력에게서 위협 받는 걸 막고, 식량을 구하는 것도 좋지만 외부인 중에 혹시 기술 있는 사람 있음? 슈퍼마켓 점장! 식량을 우리에게 주면 가족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집을 주겠음! 보호도 좋지만 교류하는 것도 중요함! 이러면서 몸소 행동하면 결말의 비극도 충분히 막을 수 있지 않나는 생각이 듭니다. 근데 그렇게 나오면 영화는 재미가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책임지기 싫어서 가만히 숨어지내다가 내쫓는다는 말에 튀어나와서 이제서야 나 국회의원 하는 사람이니 참 여기 세계관도 이런 비극이 다 있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아포칼립스 설정을 이야기 하면서 대학교 시절 친구랑 같이 아포칼립스 설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맥도날드에서 반나절을 때웠는데, 그때로 돌아가는 느낌이라 즐거웠습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그리고 인간 문명의 회복에 대해 이야기를 풀려면 아포칼립스 소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 인 것 같습니다. 비슷한 작품인 워터월드나 매트릭스, 매드맥스에서도 인간 본연의 본성에 대한 성찰이 잘 나와 있으니깐요. 


여담으로 이병헌이란 배우가 얼마나 대단한 연기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초반 김영탁은 어리숙하면서도 순진한 모습을 한 평범한 아저씨인데 중반으로 갈수록 표정이 굳어지더니 완전히 냉혹한 폭군으로 변하는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번 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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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3

아스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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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펠 레벨 2023.08.15 21:39
예전에는 노블리스 오블리제고 나발이고 부유층도 겉포장 다 벗겨내면 결국 남들과 다 똑같다-는 게 많았다면, 요새는 묘하게도 빈곤층도 권력과 부를 주게 되면 다 똑같은 짓 한다-는 게 많아진 느낌입니다.

근본적으로는 같은 얘기지만, 뭔가 계층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그런 메시지가 되니까 '어차피 너라고 다를 거 없으니까 그냥 그렇게 살아라'라는 내러티브로 들려서 좀 몬가.........몬가.......

psyche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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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레벨 2023.08.15 21:43
사실 성서 모세는 평화는커녕 고대지도자답게 시작부터 사람 때려죽이고, 반대자들 나올 때마다 동포고 뭐고 무식할 정도로 죽여댄 이야기 잔뜩 나오는 무서운 양반이긴 한데... 그건 고리적이야기니 그렇고...

21세기 한국 소시민이 그러면 용납될 수 없겠지요이모티콘

연구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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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생 레벨 2023.08.15 22:10
리뷰 보니까 영화관 안간지 꽤 됐음에도 가서 보고 싶어질 정도네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이모티콘